저 자 : 아툴 가완디
출판사 : 부 키
출판년 : 2015
서 평 : 김지인 교수 (분자의학교실)
의학이 놀랄 만큼 빠르게 발달하면서 이제 현대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언제든지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심지어 생물학적인 죽음은 여러 장비나 약물로 지연시킬 수도 있는 일’로 인식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이 병, 저 병으로 앓아눕고 기계의 도움 없이는 숨 쉬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대비하기보다 각각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에만 몰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환자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들로서, 친구로서, 의사로서 아툴 가완디는 이러한 현상을 수없이 봐왔다. ‘누구나 죽는다’ - 언뜻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막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히 의사들은 죽음을 이겨야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결국 패배이고 의사나 환자들은 죽음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죽음을 맞이하기를 거부한다. 물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의학적, 법적인 정의를 내리고자하는 시도들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왔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행함으로써 죽음에 대해 ‘나름의 위안과 의미를 찾는 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철학적, 의학적, 법적, 버킷 리스트의 죽음의 개념은 추상적인 죽음, 어찌 보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에 집중한 죽음이다. 그러나 아툴 가완디가 얘기하는 죽음은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고야 마는, 특히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의 획일적이고 개인의 삶의 의미가 무시되는 비 존엄적이고 따라서 비참한, 의미 없이 길어지기만 하는 죽음의 모습이다.
현대의 죽음은 옛날 사람들이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진 점진적인 과정이다. 어느 날부턴가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의자에 반듯이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몇 달 뒤에는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들고 있던 물건을 자꾸 떨어뜨리게 된다. 그리고 넘어지기 시작한다. 한 번 넘어질 때마다 문제가 하나씩 더해진다. 병원을 찾는 횟수는 자꾸만 늘어나는데 문제가 많이 해결되는 것 같지 않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에는 ‘낡은 집이 갑자기 무너지듯이’ 죽음이 들이닥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준비된 것도 하나도 없는데,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 때까지 이제는 끌려가는 길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 대화와 선택을 미리 함으로써 ‘어찌할 바 모르는 사이에 비참하게’가 아니라 충분히 준비된 채로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죽어가는 시점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최소한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해야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내가 존엄하게 살기 위해 확보되어야 하는 생활의 자율성은 어느 정도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다양한 사례들에서 드러나듯이 산다는 것은 단순히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사는 것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뛰어넘어 다른 개인이나 사회에 기여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삶이란 음료수를 마시며 축구 경기를 볼 수만 있어도 산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말기 질환이나 노환으로 죽음이 가까운 사람에게 ‘삶’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개념이며 누구도 다른 개념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를 이해하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많은 것을 이미 잃었지만 그래도 최선일 현재의 삶의 질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것들을 잃을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가족에게, 혹은 환자에게 있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 안다면 마지막 순간에 의사가 어떠한 의학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도 (어떤 의학적 조치를 해야 할 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던진 이 질문들은 개인과 의사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환자들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만큼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모두가 살면서 반드시 미리 생각하고 대화하고 준비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의학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사회는 구성원의 평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의사이자 보건 정책가이자 저술가이고 사상가인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현대 의학적 발전에 따라가고 있지 못한 죽음에 대한 모두의 성찰을 통해 존엄한 죽음을 가능하게 할 실제적인 대비의 필요성을 알리고, 시작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동산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36호] 백년을 살아보니 (1) | 2020.03.31 |
---|---|
[35호] 만남, 죽음과의 만남 (0) | 2019.12.30 |
[33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0) | 2019.04.30 |
[32호] 청년의사 (0) | 2018.12.28 |
[31호] 대학/중용 (0) | 2018.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