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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 New World Library

[3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집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여러분은 응당 피라미드라고 십중팔구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한둘에 해당하는 이집트의 위대한 문화유산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인류 문화유산의 결정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Library of Alexandria, 古代─圖書館, مكتبة الإسكندرية‎]

 

 

  B.C. 3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의해 설립되어 A.D. 391까지 존속했던 고대 도서관이자 박물관이다. 당시 모두 양피지 70만 두루마리의 자료를 소장했으며(1두루마리가 책 160권의 분량), 이는 요즘 책 기준으로는 대략 1억 1000만권 분량이었을 만큼 자료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지중해를 지나가는 선박을 멈추게 해 자료를 모두 필사한 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도서관에 보관했다고 한다. 문헌의 수집과 편찬 및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이 이루어지는 연구기관이었다. 현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시의 동쪽 해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3세기 초부터 프톨레마이오스왕조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이 도서관이 처음 체계화된 것은 아테네도서관의 성과를 잘 알고 있는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Demetrius Phalereus)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은 부서별로 전문화되었고 성직자가 관장을 맡았으며, 직원들의 보수는 이집트 국왕이 지불했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본관은 왕궁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기원전 235년 프톨레마이오스 3세 때는 사라피스신전(Temple of Sarapis)에 그 별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도서관이 그리스 문헌을 취합할 뿐 아니라 지중해·중동·인디아 등지의 모든 언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하기도 함으로써 국제적인 도서관으로 발돋움하려 했던 그 이상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로 그리스 문헌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기록에 남아 있는 유일한 번역은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뿐이었다.

  도서관의 편찬 계획을 통해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들을 취합하는 것, 많은 작품들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책'으로 묶는 것, 그리고 문장부호와 악센트 체계의 점진적인 도입이 이루어졌다. 국내의 서지 자료의 수합은 칼리마코스(Kallimachos)가 맡았다. 그것은 현재 유실되고 없지만 비잔틴 시대에까지 전해져 오면서 그리스문학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여러 세기 동안 유지되다가,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황제 때 일어난 내란으로 파괴되었고, '별관'으로 알려진 도서관도 391년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파괴되었다.

 

 

  도서관에서 연구한 학자로는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 △태양의 운동법칙을 불과 6분30초의 오차로 밝혀낸 천문학의 아버지 히파르코스 △지구의 둘레를 최초로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 △기하학의 기초를 세운 유클리드 △위대한 고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도서관학의 아버지 칼리마코스 등이 있다. 히브리어로 돼 있던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곳도 이곳이기도 하다.

   

 

2)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재건 배경

 

  이 고대 도서관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의 침략 때 화재로 소실된 뒤 3세기경 로마군의 침략으로 완전히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집트에서 이 고대 도서관을 복원할 계획은 미국 대통령 리차드 닉슨이 이집트를 방문한 1974년 직후부터 시작됐다. 당시 닉슨은, 이미 2천년도 훨씬 전에 파괴되어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는 진정 20세기 최고의 공공 프로젝트가 착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4년부터 알렉산드리아 대학교에 의해 처음 시작되면서,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Hosni Mubarak)과 유네스코(UNESCO)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고대 도서관 자리와 가까운 해안에 건립이 추진되었다. 건축 설계는 유네스코에서 주최한 공모에 출품한 77개국 500여 개의 작품 중에서 노르웨이의 스노헤타(Snøhetta)사의 작품이 채택되었다. BA(Bibliotheca Alexandrina) 본관 정면은 지중해를 향해 태양을 빨아들이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회색 화강암인 외벽에는 세계 120개 언어의 알파벳을 새겼다. 한글도 ‘름’과 ‘강’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집트가 국제 사회에 도서관 재건을 호소하자 유네스코(UNESCO)가 이를 받아들였고 1988년 도서관 재건 기구가 세워졌다. 1990년 이집트 아스완(Aswan)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도서관 재건을 위한 기금 6,500만 달러가 마련됐다. 1995년 공사가 시작돼 2002년 건물이 최종 완공됐다. 건물을 완성하는 데 든 비용은 총 3억 5,000만 달러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아랍 국가들이 6,500만 달러를 기부했고 프랑스와 독일, 일본이 자료를 기증하는 등 국제사회의 협조가 이어졌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2002년 개관 당시 보유 서적이 50만 권에 불과했다. 적은 수치는 아니었지만 도서관 규모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201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National Library of France)으로부터 50만 권을 추가로 기증 받으면서 보유 서적이 100만 권을 넘어 섰다. 건물은 모두 11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층마다 세계 각 지역의 책들이 주제별로 전시돼 있다. 도서관이 보유할 수 있는 책의 숫자는 800만 권에 이른다.

 

3)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도서관은 전체적으로 마치 비스듬히 기울어진 태양의 표면처럼 보인다. 북쪽을 바라보는 면에 달린 여러 개의 채광창은 절묘하게 베어진 형태로 알루미늄판 그릴로 만들어졌다. 이는 이집트 전통 주택의 창문에서 볼 수 있는 마쉬라비야 스크린처럼 실내에 태양빛이 눈부시지 않게, 하지만 충분히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도서관 전체의 형태는 마치 한쪽이 땅 속으로 함몰된 원통형으로 보이지만 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계산에 의해 탄생된 작품이다. 실내의 장대한 열람실은 최고 높이가 42미터에 이르는 가느다란 콘크리트 기둥 90개가 원을 그리며 서 있는, 다주(多柱)식 홀의 구조이다. 이곳은 중동에서 가장 큰 연구기관으로, 800만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또 일곱 층의 대형 공간에서는 각각 서로 다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지붕 채광창에 설치된 녹색과 청색 유리를 통해 내부로 스며들어오는 황홀한 자연광은 형이상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총 11층으로 이루어진 도서관 중 5개 층은 지하에 지어졌으나 자연광이 지하까지 비춰져 어둡지 않다. 지하 4층은 철학, 종교, 역사, 지리를 다루며 지도와 서예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지하 3층은 문학과 언어를 다루며, 멀티미티어 도서관과 현대 이집트 작가인 타하 후세인(Taha Hussein, 1889-1973) 도서관이 있다. 지하 2층은 예술과 문화를 다루며, 음악도서관이 있다. 지하 1층은 경영 및 개발에 대한 도서들이 있으며, 세계 각국의 정기간행물이 소장되어 있다. 1층은 사회과학을, 2층은 자연과학을, 3층은 신기술을 다루고 있다. 현재까지 확보된 서적 및 소장자료는 50만 본에 달하며, 이 중에는 알렉산드리아에 산재했던 지역 도서관에서 수집된 고서와 5천 여권에 이르는 중세의 주요 과학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부속 건물로는 국제회의장, 천문관, 박물관, 미술관 등이 있다.

 

  원통 건물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벽은 곱게 자른 것이 아닌 커다란 각석을 쪼개어 만든 화강암 판으로 입혀졌다.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윤곽은 부드럽다. 이 화강암 판에는 각 언어의 문자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태양의 동선과 인접한 수괴에서 반사되는 전자광은 화강암 판에 새겨진 문자에 역동적인 그림자를 그려 넣으며 고대 이집트 사원의 벽면을 재현합니다. 도서관의 웅장한 중앙 회의장(직경 160m의 반원형)은 강렬함을 자아낸다. 굴곡진 벽면은 강도 높은 재료와 개방형 수직이음으로 되어 있는 반면 평면은 잘 닦은 짐바브웨산 흑석으로 덮였다. 일곱 개의 층은 지중해 쪽을 향해 내려가는 북향이며 계단식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