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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서평

[33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모든 사람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나라.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 정부 부처의 장관을 뽑을 때나 수익을 최고로 추구하는 기업 경영자를 뽑을 때도 사회성이나 도덕성의 잣대로 평가하여 진영을 나누어 서로 다투는 나라. 정권이 바뀌면 조선시대의 당쟁이나 사화와 다름없는 적폐 논란과 역사 해석 방법의 차이로 드러난 온갖 집권자의 기준에 의해 구속과 탄압이 반복되는 나라. 부패한 정치인의 뇌물수수가 드러나서 구속되고, 자살하지만 편을 갈라 진영논리로 미화시키는 나라. 이러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내재적 특징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8년 유학하며 한국사회를 연구한 교토대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으로 한국을 '이(理)의 사회'로 규정하고, 아시아 유교국가들과는 다른 한국인의 독특한 성향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성리학은 ‘이(理)’와 ‘기(氣)'라는 개념으로 인간과 사회와 우주를 통일적으로 설명한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논쟁하던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서 '이'는 보편적인 도덕과 이념(이데올로기)을 의미하고, ‘기’는 욕망과 현실 혹은 물질과 경험론이다.

   '이'가 도덕과 정신, 명분과 형이상학이니 '기'는 당연히 종속적이어야 하고, 이러한 현실이 이념에 따르고 욕망이 도덕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주리적인 입장이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했고 지금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진영논리의 뿌리이다.

 

   현재 한국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주리적 성향은 조선시대 5백년을 이어온 뿌리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주리적 관념철학이 사화와 소중화론을 낳았고,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으로 이어졌고, 성리학이 추구하는 관념의 세계에 빠진 한국인들은 지금도 고립과 쇠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여전히 '이(理)'가 살아 숨 쉬는 '철학의 나라'이고, 관념(이데올로기)과 명분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나라이다.   

 

   저자는 북한을 '이기(理氣) 사회주의 완성체'로 보았다. 

   남한이 추구하는 실용보다 이념, 성장보다 분배, 부국강병보다 포용국가를 추구하는 사회적인 성향도 주리적인 성리학의 영향이고,  현 정권의 노동 중심 사회는 조선시대 사대부가 추구하던 농본(農本) 사회의 역사적 재현이며, 관(官)의 역할을 강조하는 '큰 정부' 철학은 성리학의 왕도(王道) 정치와 같은 철학이다.

   한국인에게 내면화된 독특한 ‘이(理)’ 지향성향은 결국 관념과 명분을 중시하는 ‘도덕지향적’인 한국인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인들의 도덕지향성을 생활과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 속에서 하나하나 예를 들며 증명해 나감으로써, 현실과 물질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기(氣)'지향성의 일본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서 참담하지만, 한국인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서평: 가정의학과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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